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이비드 스털링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과 [[SAS(특수부대)|SAS]] 설립 == 1940년 6월에 그는 당시 영국 육군에 새로 창설된 [[코만도(특수부대)|코만도 부대]] 중 하나인 제8 코만도 부대(부대장, 로버트 레이콕 중령)에 지원했다. 그의 부대는 1941.1.31일 중동지역 전력 증강을 위해 제7, 8, 11코만도로 구성된 Force Z를 구성하여 중동지역에 파병되었다. 1941.3.7일 Force Z는 부대장 레이콕 중령의 이름을 따 Lay Force로 부대 이름을 변경했다. 스털링이 속한 8코만도는 Lay Force B대대로 [[크레타 섬 전투]]에서 독일 공수부대와 교전 끝에 병력의 75%를 잃고, 이후 이어진 몇 차례의 전투에서 작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심대한 피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4개 대대로 구성된 Lay Force는 거의 와해되기에 이르른다. 당시 Lay Force에는 사병 출신 장교인 로저 코트니 육군 대위가 소형 보트를 이용해 후방에 침투하여 소규모 기습공격을 하는 부대인 보트 특전분대([[SBS(특수부대)|SBS]])를 이끌고 있었다. 1940년 스털링과 같은 육군 제8코만도에 지원한 로저 코트니는 1940.10월 코만도 훈련소에서 SBS 부대를 구상하여 대위로 특진까지 했었다. 스털링은 기계화된 현대의 무자비한 전쟁에 자신의 부대가 와해될 지경에 이르자 크게 낙심하여 낙하산을 이용해 후방에 침투하여 소규모 기습공격을 하는 부대를 새로이 구상하여 로저 코트니처럼 사령부를 직접 찾아가[* 이 때 그냥 찾아간 게 아니라 경비원을 따돌려 아군 사령부에 침투를 하는 패기를 보였다]장군들에게 자신의 구상을 드라마틱하게 밝힌다. 당시는 와해 직전의 Lay Force 예하 4개 코만도 대대 잔존 병력과 신편 51코만도를 중동코만도로 재편 중이었는데, 스털링의 제안으로 중동코만도 1, 2소대는 공수특전단(SAS) L파견대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했다.(SAS라는 이름은 영국 본토에 있던 제11SAS 대대에서[* 1940년 제2코만도 부대가 낙하산 부대로 개편되면서 부대 명칭이 제11SAS대대로 개칭되었고, 1941년에 다시 제1낙하산 대대로 개칭되었다.] 따온 것이다.) 중동코만도 3소대는 8코만도 잔존병력, 4,5소대는 51코만도 잔존병력, 6소대는 로저 코트니 대위의 SBS로 구성되었다. 1941.11.16일 실시된 스털링의 SAS 부대는 독일 공군 비행장에 대한 첫 번째 낙하산 기습침투를 실시했지만 중간 집결지에 공수낙하한 62명의 대원 중 40명이 강풍에 날아가 행방불명이 되거나 낙하산 착지 불량으로 부상을 당해 공격목표인 독일군 비행장에는 가지도 못하고 작전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작전에 실패한 SAS를 구조하러 온 부대는 영국 제8군의 장거리 차량화 정찰부대인 장거리 사막단(Long Range Desert Group, LRDG)이었는데, 스털링은 이들을 보고 낙하산 기습침투 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해 후방에 침투하여 소규모 기습공격을 하는 부대를 다시 구상하게 된다. LRDG의 전문가들이 SAS를 목표지점까지 안내해 주면 SAS가 적을 기습공격하고 LRDG가 SAS를 다시 부대까지 오는 길을 안내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1942.6월 마침내 SAS의 첫 자동차 기습작전이 시작되었다. 3개 비행장을 기습공격한 SAS는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LRDG의 안내를 받으며 무사히 기지로 돌아왔다. SAS 작전 중 최고의 성공을 거둔 작전은 1942.7.26일 실시된 시디 하니시(Sidi Haneish) 비행장 기습작전으로 SAS는 이날 폭격기와 수송기 37대를 파괴했다. 이후 SAS는 차량을 이용한 [[히트 앤드 런]] 작전으로 1943.1월 스털링이 독일군에 포로로 잡히기 전까지 250여대의 추축군 항공기를 파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